빈방, 부서진 세계와 잃어버린 시간의 복원
김혜원(사진가, 명지대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연구교수)
1. 근대라는 이름의 근거지 박탈사로부터
세계의 근대사는 도시화와 산업화가 야기한 근거지 박탈의 역사이자 이산과 이주의 역사이다. 인간이 자연과 함께 한곳에 뿌리내리고 살면서 신화와 전설을 만들던 완벽한 세계를 상실하고 이산과 이주를 강요받아 집을 나서야 했던 일은 한국의 근대사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프랑스의 도시 재건축 사업으로 찍게 된 외젠 앗제(Eugene Atget)의 파리 구시가지 사진, 개발이 야기한 지형 변화에 주목한 뉴 토포그래픽스(New Topographics)의 사진들, 달동네를 기록한 한국의 수많은 다큐멘터리 사진들은 모두 도시화, 산업화가 낳은 근거지 박탈사에 대한 사진적 성찰이었다.
조현택의 ≪빈방≫도 이러한 근대성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짓고 부수고, 짓고 부순다.”라는 그의 작가노트 첫 문장처럼, ≪빈방≫은 문화재를 복원하거나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등 도시정비사업으로 철거가 예정된 곳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나주, 함평, 광주, 순천, 벌교, 중국의 빈집과 빈방의 폐허 속에서 근대 문명으로 훼손된 정신적 가치를 복원하기 위한 여러 사진적 방법을 모색하였다.
2. 카메라 옵스큐라, 부서진 세계의 복원
조현택이 찾은 사진적 방법은 먼저 카메라 옵스큐라의 작은 구멍을 자신의 개성적 언어로 삼는 것이었다. 그는 빈방에 들어가 문에 설치한 암막커튼에 구멍을 내고 어두운 빈방을 거대한 카메라 옵스큐라로 만들었다.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을 따라 그 맞은편 마당 풍경이 상하좌우가 전도된 상태로 벽에 비친 영상을 기록하였다. 텅 빈 방안의 커튼 위에 흐드러진 노란 유채꽃처럼 시적이고 서정적인 이미지(0번방), 흰 사각타일 위 나목과 잔설의 겨울 풍경처럼 회화적인 이미지(29번방), 천장 위로 쌓인 흙벽 파편 위 위태로운 기와집처럼 철거 장면을 보여주는 이미지(68번방), 알루미늄 문 주위로 펼쳐진 마을 어귀 도로와 들판과 야산처럼 마을 경관을 보여주는 이미지(49번방), 이들은 모두 축축한 먼지얼룩과 번식하는 곰팡이와 깨진 파편들이 어우러져 이루어 낸 환상적인 이미지들이었다. 옷걸이, 달력, 전구, 우산, 빗자루, 저울 등 빈방의 사물과 중첩된 들꽃, 푸성귀, 감나무, 고무장화, 안테나 등의 빈집 풍경은 뿌리 뽑힌 이들에 대한 추억과 지상의 사라져가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을 환기시키는 생활 세계의 목록들이었다. 들판과 야산과 햇살과 구름 등의 자연 풍경에 둘러싸인 허름한 집들과 마을 경관은 근거지를 박탈당한 자들이 한때 삶을 영위하던 실존적 터전이었다.
그러나 조현택의 ≪빈방≫의 힘은 그것이 단순히 추방당한 이주민이나 버려진 빈방에 바치는 애도의 정을 넘어 근대화, 도시화, 산업화로 인해 부서진 세계를 복원한다는 데 있다. 이는 주로 부서진 사물들을 모아 다시 결합하여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방안과 방밖, 어둠과 밝음, 죽음과 삶, 현실과 환영이라는 두 이질적 세계의 조우와 공존을 통해 근대가 야기한 부서진 세계를 복원하였다. 또한 전도된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고 다시 뒤집어 보이기도 하면서 실재와 허구를 뒤섞고 다시 버무리는 방법을 구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실재와 환영이 공존하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삶에서 죽음으로 이행하고 있는 빈방을 다시 죽음에서 삶으로 복원할 수 있었다. 카메라 옵스큐라가 빚어내는 허상, 또는 실상과 허상이 만화경처럼 어룽대는 환영 속에서 그의 시적 상상력이 포착한 빈방의 세계는 근대를 넘어서고자 창조된 또 하나의 시공간이었다.
3. 타임 터널, 잃어버린 시간의 복원
또한 조현택은 타임 터널을 이용하는 사진적 방법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복원하고자 하였다. 그는 카메라 옵스큐라의 장시간 노출을 이용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누적시켰다. 카메라 셔터는 시계 장치이고 장시간 노출은 타임 터널이다. 그는 장시간 노출로 빈방 안 사물의 시간과 빈방 밖 풍경의 시간, 즉 각기 다른 시간의 층위를 동일한 타임 터널 안 필름에 누적시켜 파괴된 시간을 복원하였다. 실제로 그는 필름 위에 흐드러진 유채꽃을 피우기 위해 이듬해 봄날을 기다리며 긴 타임 터널을 건너기도 하였다.
나아가 그는 빈방에 흘러들었던 시간을 전시장에 다시 불러들이는 방식으로 소멸된 시간을 복원하였다. 이는 ≪빈방≫을 스크린 영상으로 보여준 ≪광주비엔날레 포트폴리오리뷰특별전≫(무각사문화관, 2016)에서 두드러진다. 그는 영상이 흐르는 시간을 각 빈방을 촬영한 노출 시간만큼 재어 초단위로 울리는 시계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게 하였다. 또한 주인이 버리고 간 20여 개의 손목시계를 되살려 이를 심장 박동 그래프 형태의 설치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이처럼 조현택이 시간을 채집하여 전시장에 재현한 것은 시간의 거스름을 통해 삶의 근원을 새롭게 회복하고자 한 의도에서였다. 촬영 시간만큼 나타났다 사라지는 빈방의 영상들은 현재에서 과거를 응시하게 하고 잃어버린 빈방의 시간을 지각하게 한다. 다시 감긴 손목시계의 태엽은 근대가 멎게 한 시간을 되살리고 진보와 혁신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근대적 시간을 반성하게 한다. 그는 시간의 소멸을 견디는 이 같은 방식으로 시간을 중재하면서 근대화 프로젝트가 한순간에 말소한 시간을 소생시켰다.
4. 빈방이 구축한 신화적 세계로
결국 조현택의 ≪빈방≫은 실상과 허상을 뒤섞어 환영을 창조함으로써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물이 혼융일체되어 유기체로 존재했던 시공간, 그 신화적 세계를 구축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이 신화적 세계는 현대 소비 사회가 구축한 화려한 상품물신적 신화와 대척에 서게 된다. 오히려 주인이 떠난 빈집과 주인이 버리고 간 빈방의 사물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낳은 폐품, 하나의 사회적 배설물로 기능한다. 따라서 빈집의 폐허와 빈방의 폐품을 최대한 아름다운 오브제로 바꾼 ≪빈방≫은 ‘생산-유통-소비-폐기’의 근대 산업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시스템 논리를 넘어서게 된다. 더구나 액자, 망치, 핸드폰, 메달, 묵주, 염주 등의 폐품을 수거한 조현택은 2016년 전시 ≪빈방≫(스페이스 22)에서 액자와 망치를 설치 작업으로 보여주면서 사물의 업사이클링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빈방≫에서 눈에 띄는 사진은 부서지고 잃어버린 시공간에 경외감을 드러낸 사진들이다. ≪빈방≫의 유령 같은 환영 이미지들은 근대가 이성과 비이성으로 이분화하여 폐기한 시원의 세계를 소환해 낸다. 사방연속무늬 벽지와 중첩된 풀꽃더미는 꽃으로 상징되는 생의 원초적 감각을 보여준다.(35번방) 물 얼룩진 벽지 속 폐가에 옹기종기 남은 빈 장독들은 장독대를 지키던 철륭신 이야기를 들려준다.(38번방) 방안의 기타가방과 어우러진 신록의 등나무 줄기는 음악의 여신 뮤즈(Muse)를 불러온다.(34번방) 조현택은 생의 에너지로서의 신화적 세계와 대지에 뿌리내렸던 인간 근원의 세계를 되찾아 근대 문명의 불모성과 무생명성을 뛰어넘고자 하였다.
이로써 조현택의 ≪빈방≫은 철거 지역을 기록한 수많은 사진들과 변별성을 갖게 된다. 즉 그의 사진은 개발의 참상을 통해 감상을 유도하거나 인간의 진보에의 욕망을 고발하는 사진들과는 차원을 달리하게 된다. 외젠 앗제의 다큐멘트가 당시 픽토리얼리즘의 아우라를 일거에 소독하였듯, 뉴 토포그래픽스의 풍경 사진이 대자연의 웅변적 찬사에서 벗어나 인간의 손이 개입한 지형을 중립적으로 보여주었듯, 조현택은 카메라 옵스큐라라는 개성적인 언어로 정지된 프레임 안에 박탈당한 시공간을 중첩시켜 새겨 넣었다. 그리하여 그의 눈부신 시각적 판타지는 빈방이 구축한 황홀한 신화적 세계로 언제든지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